정보 중독의 덫

정보 중독의 덫

행동 대신 검색으로 만족을 찾는 디지털 시대의 역설

최근 몇 년 사이, 일종의 ‘정보 수집 도파민’ 중독이 사회 전반에 퍼진 듯하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자료를 더 모으거나, 주식 투자를 위해 새로운 기법을 끊임없이 검색하는 행위에서 오는 일시적인 성취감이다. 이처럼 정보를 얻는 과정 자체에서 쾌감을 느끼고, 정작 행동으로 옮기는 단계를 계속 미루는 현상을 이제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할 때가 되었다.

이는 오늘날 개인이 직면한 디지털 정보 과부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정보는 이전 시대에 비해 비교 불가할 정도로 풍부해졌으나, 그 양이 인간의 처리 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미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사이먼이 이미 1970년대에 예견했듯이, 정보의 풍요는 주의력의 빈곤을 낳는다. 즉, 중요한 것은 어떤 정보를 소유하는가가 아니라,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무엇에 집중하고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정보를 더 많이 확보하면 현실의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환상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는 마약처럼 중독되어,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실제 행동을 회피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러한 행동 지연의 함정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 기업과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반복된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자원과 시간을 투입하지만, 정작 필요한 혁신적인 결정이나 과감한 정책 집행은 미뤄지는 경우가 잦다. 과거 냉전 시대의 ‘정보 전쟁’이 정보를 소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21세기의 경쟁력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행동에 나서는가에 달렸다. 스탠퍼드대학교의 한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은 완벽한 정보를 기다리기보다, 불완전한 정보라도 신속하게 시장에 제품을 내놓고 피드백을 통해 개선하는 접근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도파민은 '검색 결과 창'이 아니라 '제품의 출시'와 '사용자의 반응'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과 높은 인터넷 접속률을 바탕으로 정보의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실질적인 사회적 성과나 구조적 개혁으로 연결하는 데는 더딘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나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수많은 연구 보고서와 통계가 쌓여도,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무릅쓴 결단력 있는 제도 개혁은 진전되지 못한다. 정보는 권력이 아니라 행동의 전제일 뿐이다. 정보 탐색의 쾌감에 취해 현실의 고통과 직면하지 않으려는 사회는 결국 정체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의 윤리는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정보의 무게만큼 책임 있는 행동을 실행하는 용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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