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이름의 금융화된 압박

'자유'라는 이름의 금융화된 압박




'자유'라는 이름의 금융화된 압박


퇴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점심시간 회사 식당에서 스마트폰으로 주식거래시스템(MTS) 화면을 켜보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투자 공부를 하라'는 조언은 이제 자기계발을 넘어선 생존 지침처럼 들린다.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생존을 위한 제2의 노동이 된 듯하다. 이 현상 뒤에는 금융화(Financialization)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놓여 있다. 금융화란, 금융시장과 금융 동기가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의 가치 창출과 분배를 지배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노동을 통한 소득만으로는 자산 가치 상승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에서, 개개인은 주식과 코인 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률적 사고'로 감내하며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는 투자가로 변모해야만 하는 압박에 놓인다. 시장 전문가들의 조언은 지당하지만, 그 지당한 조언조차 노동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는 현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한 역설을 품는다.

이러한 개인의 책임 강화는 역사적 맥락에서 위험 전가(Risk Shifting)의 한 형태로 읽을 수 있다. 과거 기업과 국가가 상당 부분 책임졌던 노후 대비, 주택 마련 등의 위험이 이제 개인의 몫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서구권에서 시작된 공적 연금의 축소와 개인 퇴직연금(미국의 401k 등) 의존 증가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불안정해진 노동 소득과 낮은 사회 안전망이 강요하는 생존 전략에 가깝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노동 소득으로 시드머니 1억 원을 모으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 목표가 되는 상황에서, 고수익을 기대하는 '레버리지 투자'는 개인의 탐욕이 아닌 구조적 결핍을 메우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 되기도 한다. 단기적 변동성은 크지만 장기적 추세는 지배한다는 투자의 격언은,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에서는 단기적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장기적 추세조차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망적 메시지로 읽히는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논의는 개인이 어떤 '사고방식'을 버리고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넘어, 왜 개인의 지적 성장이 아닌 자본 소득이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궁극적 잣대가 되었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자본의 논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자에게 보상을'이라고 말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도록 등을 떠미는 것은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다. 권력과 자본은 플랫폼을 통해 '현명한 투자법'이라는 조언을 제공하면서도, 그 조언이 필요한 상황 자체를 야기한 구조적 책임은 회피하고 시민 개인에게 모든 불확실성의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 개인의 '확률적 사고'를 연마하는 노력만큼이나, 노동만으로도 가치 있는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생존 매뉴얼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진정한 자유를 향한 길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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