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노동 전환의 서곡, 성장률 뒤에 가려진 것

거대한 노동 전환의 서곡, '성장률' 뒤에 가려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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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발표한 향후 10년간(2024~2034)의 고용 전망 보고서는 거대한 노동 시장의 변화를 예고한다. 미국 전체 고용은 3.1% 증가에 그치지만, 보건의료 및 사회 지원 분야는 8.4%, 전문·과학·기술 서비스 분야는 7.5%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었다. 특히 간호사, 데이터 과학자, 정보 보안 분석가 등의 직업군이 성장을 주도하며 높은 연봉까지 약속하고 있다. 수치만 놓고 보면, 미래는 유망 산업의 성장에 따른 '골드 러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성장률의 이면에는 인구 구조의 변화, 기술 진보의 명암, 그리고 불평등 심화라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직업 변화가 아닌, 노동의 가치와 위험이 재분배되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100년 전 ‘농업 노동의 종말’과 닮은꼴

미국 노동통계국의 분석은 두 가지 핵심 동인을 짚는다. 하나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폭발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 인력 수요 증가이다. 이는 마치 100여 년 전 산업혁명 시대, 농업에서 공업으로 노동력이 대거 이동했던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의 현대판처럼 느껴진다. 19세기 후반, 트랙터와 자동화 농기구가 등장하면서 농업 노동은 급격히 감소했지만, 그 대신 공장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그러나 이 전환은 농촌 공동체의 해체와 도시 빈민 문제라는 심각한 사회적 대가를 치렀다.

지금의 상황도 유사하다. 풍력 발전 서비스 기술자(50%), 태양광 설치 기술자(42%)처럼 미래 에너지를 담당하는 직업이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지만, 실제 추가되는 일자리는 각각 6,800개, 12,000개 정도로 미미하다. 반면, 간호 실무사(40%, 128,400개 증가)와 의료보건 서비스 관리자(23%, 142,900개 증가)는 실제 고용 증가를 견인한다. 이처럼 숫자가 말해주듯, 미래 노동의 핵심은 '사람을 돌보는 일'과 '기술을 개발하고 방어하는 일'로 수렴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고령화와 저출산, 그리고 디지털 전환이라는 강력한 파고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플랫폼과 자본이 전가하는 '돌봄 노동의 위험'

문제는 성장의 과실과 비용이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개발·보안 전문가처럼 높은 연봉을 받는 디지털 엘리트 직업군이 탄생하는 반면, 실질적인 고용을 책임지는 보건 의료 및 돌봄 노동은 여전히 낮은 처우와 과도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 보고서에서 물리 치료사 보조는 22%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지만, 중간 연봉은 6만 5천 달러 수준으로 데이터 과학자(11만 2천 달러)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필수 노동자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지만,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와 같은 돌봄 노동은 여전히 저임금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 노동밀집 노동의 위험은 고스란히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된다. 노동 통계는 일자리의 '양적 성장'을 보여줄지언정, 그 일자리의 '질적 가치'와 '안전망'을 대변하지 않는다. 기술 진보의 혜택을 누리는 플랫폼 기업과 자본이 사회적 돌봄의 비용까지 시민과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의 렌즈로 미래 노동을 직시할 때

미래의 일자리가 '돌봄'과 '기술'이라는 두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두 영역의 가치와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를 시작해야 한다. 기업은 ESG 경영의 관점에서 탄소 중립 기술자뿐만 아니라, 자사의 플랫폼 노동자, 그리고 간접적인 사회적 비용으로 발생하는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과 안전망 확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국가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를 단순한 경제 지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돌봄 노동을 '사회적 필수 서비스'로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성장률이라는 숫자의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는 '노동의 정의(正義)'를 다시 세워야 할 시점에 와 있다. AI와 고령화가 가져올 미래 노동 시장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고수익의 디지털 노동과 저수익의 필수 노동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제언이 될 것이다. 미래 세대의 노동 환경이 단순히 높은 성장률 뒤에 숨겨진 불공정한 몫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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