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소리에 숨죽이는 당신... 초연결 시대의 역설, 관계빈곤을 넘어 사회적 처방으로

옆집 소리에 숨죽이는 당신




옆집 소리에 숨죽이는 당신

초연결 시대의 역설, 관계빈곤을 넘어 사회적 처방으로


현관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숨을 죽인다. 엘리베이터가 멀어지는 소리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문을 연다. 경기 고양시의 한 직장인이 털어놓은 이 풍경은 더는 유난스러운 개인의 결벽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관계빈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온라인상에선 수백 명의 친구와 연결되어 있고, 스마트폰 하나로 끼니와 생필품을 해결하는 초연결 시대다. 하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 손 내밀 이웃은 사라졌다. 통계는 냉혹하다. 최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은 우울할 때 대화할 상대가 없다. 경제적 빈곤은 수치상 완화되는 추세지만, 타인과 맺는 유대의 총량은 급격히 줄어드는 관계의 기근이 시작되었다.

일찍이 이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인식한 나라가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를 신설했다. 주목할 지점은 외로움을 개인의 성격 결함이 아닌 공중보건의 영역으로 규정한 태도다. 영국 의사들은 잠 못 드는 환자에게 수면제 대신 사회적 처방을 내린다. 지역 합창단이나 정원 가꾸기 모임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전담 인력이 그 과정을 돕는다.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 경고를 정책에 녹여낸 결과다. 이를 통해 일반 의사 방문율이 줄어드는 등 실질적인 의료비 절감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고립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고 공적 인프라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모범 사례다.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사후약방문에 가깝다. 고독사 예방법이 시행 중이지만, 이미 숨진 뒤의 비극을 수습하는 데 치중할 뿐이다. 장시간 노동과 무한 경쟁은 시민들에게 관계를 맺을 여유를 뺏어갔다. 성과와 효율만을 강조하는 자본의 논리는 타인을 협력의 대상이 아닌 경쟁자나 잠재적 위협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주거 공간의 밀폐성은 이웃을 향한 경계심을 공포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국가와 자본이 담보해야 할 정서적 안전망을 각자도생의 골방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공동체 복원이라는 구호는 화려하지만, 정작 포용을 실천할 제도적 장치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외로움은 이제 개인의 수치심이 아닌 사회적 권리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집 안으로 숨어드는 개인을 비난하기 전에, 밖으로 나와도 안전하고 따뜻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 마을 도서관의 강좌를 늘리고 공공 디자인을 통해 대면 접촉의 기회를 확장하는 등 생활 밀착형 대책이 절실하다. 고립된 개인이 치러야 할 비용과 위험을 사회가 나누어 짊어지는 공공의 책무를 회복해야 한다. 당신의 이웃이 문밖의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는 사회는 과연 불가능한 꿈인가. 우리는 지금 타인을 지옥으로 만드는 구조 속에서 각자의 섬으로 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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