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권... 공유 캘린더가 뺏어간 노동의 자율성

되찾아야 할 시간의 주권



되찾아야 할 시간의 주권

공유 캘린더가 뺏어간 노동의 자율성


판옵티콘(파놉티콘panopticon)은 죄수를 감시하는 원형 감옥이다. 중앙 타워에서 간수가 모든 방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간수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현대 직장인의 책상 위에도 디지털 판옵티콘이 자리 잡았다. 동료와 상사가 내 하루의 빈틈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공유 캘린더다. 효율과 협업이라는 명분 아래 도입된 이 도구는 어느새 개인의 시간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통제하는 폭군으로 돌변했다. 일정표의 빈칸은 곧 가용 상태를 의미하며, 누군가 그곳을 자신의 회의나 업무 요청으로 채워넣는 행위는 권리처럼 행사된다.

역사적으로 노동 시간의 통제는 자본과 노동의 핵심 전장이었다. 산업혁명기 공장의 출근 시계가 신체적 속박이었다면, 디지털 캘린더는 정신적 점유다.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의 사회과학자 바네사 시코네가 연구한 사례를 보면 투명한 일정 공유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형성한다. 고위직의 비공개 일정은 업무상 비밀로 존중받지만, 하급자의 비공개 칸은 불성실이나 은밀함으로 의심받는다.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맞춰 전시해야 하는 상황은 노동의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누군가에게는 협업의 도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24시간 감시 체제나 다름없다.

기술 기업들은 이제 인공지능(AI) 비서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장담한다. AI가 내 집중 시간을 방어하고 타인의 비서와 대신 협상하며 일정을 조정해준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 기술적 미봉책에 가깝다. 일정 조율의 피로감을 기계에게 떠넘길 수는 있겠지만, 타인이 내 시간을 언제든 침범할 수 있다는 구조적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AI 에이전트끼리 내 시간을 놓고 흥정하는 풍경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기획하는 주권을 기술과 플랫폼에 완전히 넘겨주었음을 시사할 뿐이다.

공유 캘린더의 폭정은 결국 권력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한다. 플랫폼은 연결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대가로 개인의 사적 경계를 허물었고, 기업은 이를 관리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이제 질문은 기술이 일정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시간을 침해할 권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로 향해야 한다. 내 캘린더의 빈칸은 타인의 점령지가 아니라, 나의 사유와 휴식을 위한 유보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오프라인의 시간은 우리 시대의 가장 귀한 사치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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