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도 잘 쓰면 약이라지만
독약도 잘 쓰면 약이라지만
외환위기 3대 방어책 전면 해제와 유동성 리스크의 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은 '단기외채'라는 올가미였다. 조선업의 대호황으로 미래에 받을 달러를 미리 파는 선물환 매도가 급증하자, 은행들은 이를 맞추기 위해 해외에서 저리의 단기 달러를 대거 빌려왔다. 평시에는 저금리 혜택을 누리는 영리한 전략처럼 보였으나,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유동성이 막히자 이는 곧바로 국가적 재앙이 되었다. 빌려온 달러는 내 돈이 아니라는 뼈아픈 교훈을 남긴 채 환율은 1500원을 넘어 치솟았다.
그날의 트라우마 이후 정부는 세 겹의 단단한 방어벽을 쌓았다.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을 묶고,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를 도입했으며, 외화 부채에 부담금을 물려 과도한 차입을 억제했다. 10여 년간 한국 외환시장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해온 이른바 '외환 건전성 3종 세트'다. 그런데 최근 외환당국이 이 방어벽을 사실상 전면 해제하고 나섰다. 선물환 한도를 대폭 확대하고 유동성 규제를 유예하더니, 급기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외화건전성 부담금까지 한시 면제하기로 했다.
당국의 결단은 고환율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규제를 풀어 은행과 기업이 달러를 더 많이 들여오게 유도함으로써 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계산이다. 9/11 테러나 코로나 팬데믹 같은 거대 충격 때나 열렸던 임시 금통위까지 소집한 것은 현재의 환율 상황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단 시장에 달러가 돌게 하여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이 건전성 수치보다 우선이라는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유동성 확보를 위해 건전성을 희생하는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빗장을 푸는 순간 당장은 환율이 진정될 수 있으나, 위기가 닥쳤을 때 갚아야 할 단기 외채의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수밖에 없다.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옷이 무겁다고 구명조끼를 벗어 던지는 격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부와 금융권은 규제 완화로 유입될 달러가 투기적 수요로 흐르지 않도록 감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위기는 항상 방심의 틈을 타 가장 취약해진 연결고리를 끊으며 찾아오는 법이다. 독약도 잘 쓰면 약이 된다지만, 그 양을 조절하지 못하면 치명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환율 #글로벌금융위기 #조선업 #선물환 #외화건전성 #임시금통위 #단기외채 #한국은행 #외환시장 #경제안보
🚨주의: 이 블로그 자료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블로그에서 다루는 내용은 투자 권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특정 금융 상품의 매수 또는 매도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투자 결정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이 블로그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