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기적, 위험한 분장술... 연말 종가 관리를 위한 무리한 개입과 국민연금에 전가되는 비용의 실체

환율의 기적, 위험한 분장술




환율의 기적, 위험한 분장술

연말 종가 관리를 위한 무리한 개입과 국민연금에 전가되는 비용의 실체


12월 24일 성탄 하루 전, 서울 외환시장은 기이한 풍경을 연출했다. 특별한 국제적 호재나 경제 지표의 개선이 없었음에도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30원 넘게 급락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윈도 드레싱(Window Dressing)이라 부른다. 상점들이 연말에 쇼윈도를 화려하게 꾸며 손님을 유혹하듯, 정부와 통화 당국이 장부상 수치를 좋게 보이게 하려고 환율이라는 가격 지표를 인위적으로 마사지한 셈이다.

이러한 개입을 두고 박종훈 박사(박종훈의 지식한방)는 간달프의 지팡이에 비유했다. 영화 속 마법사가 발록 앞에서 더 이상 지나갈 수 없다고 선언하듯, 특정 환율 방어선을 설정하고 시장의 투기 세력을 압박하는 방식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무모하게 쏟아부으며 방어에 나섰다가 파국을 맞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한-미 통화스와프라는 근본적인 처방이 나오고서야 시장이 진정됐다. 현재의 상황은 급성 발작보다는 만성 질환에 가깝다.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42개월째 이어지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정부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 대신 개입이라는 진통제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연말 종가 관리에 매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환율이 높으면 달러 부채가 많은 기업의 재무제표는 악화되고,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BIS 비율은 급락한다. 대외 부채의 원화 환산 규모를 줄여 국가 부채 비율이 낮아 보이게 만드는 착시 효과도 노린다. 문제는 이 화장 비용을 누가 치르느냐는 점이다. 이번 개입에는 국민연금의 환헤지(환율 변동 위험 회피)가 동원된 정황이 짙다.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상황에서 환헤지를 지속하면, 국민연금은 금리 차이만큼의 막대한 이자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미래 세대의 노후 자금이 정부의 지표 관리용 방패막이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결국 권력과 자본은 자신들의 실책으로 발생한 위험과 비용을 교묘하게 시민의 몫으로 떠넘기고 있다. 대규모 감세로 인한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 재정은 제 역할을 못 하고, 금리 정상화라는 정공법을 피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연금 자산의 손실로 전가된다. 화려한 연말 종가 관리로 잠시 눈을 가릴 순 있어도, 만성적인 고환율 구조를 방치한 대가는 언젠가 더 가혹한 형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일시적인 수치 조작으로 얻은 평화가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 우리는 그 화장이 지워진 뒤의 민낯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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